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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강연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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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강연균(1941년 광주 출생)은 한국 민중미술의 실천에 있어 주요한 역할을 담당해온 작가이다. 1980년 5·18 이후 광주의 현실을 미술을 통해 알리고자 했으며, 1980년대 민중미술이 활성화되는 데 기여했다. 1969년부터 1975년까지 『전남일보』 문화부 기자로 재직했고, 이후 로댕화실을 운영하며 수채화로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열어 왔다. 민족 현실의 극복에 뜻을 모아야 한다는 예술인들의 마음을 담아 창립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(민예총) 지도위원(1988) 및 공동의장(1992~1995)을 역임했다.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때 안티비엔날레를 조직했으며, «광주통일미술제»라는 이름으로 망월묘역 야외 전시에 전국에서 모인 200여 작가의 작품을 소개했다. 이후 광주시립미술관장 겸 광주비엔날레 사무차장(1996~98)을 역임했다. 수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하였고, 1996년 광주 오월시민상, 1998년 보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하였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