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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홍성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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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홍성담(1955년 신안 출생)은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1979년 광주자유미술인회 조직에 참여해 1980년 5·18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신군부에 맞서 투쟁하는 선전요원으로 활동했다. 그 경험이 파동이 되어 한국의 정치와 사회 상황에 관심을 갖게 된 작가는 1983년 민중미술의 첫걸음이 된 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하게 된다. 민중미술운동의 주요 일원으로서 홍성담의 목판화는 5·18민주화운동을 예술로 나타낸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다. 또한 그는 지역 간 연대 창작물인 걸개그림 <민족해방운동사> 작품 슬라이드를 북한에 보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어긴 혐의로 1989년 7월 체포되었다. 1990년 국제엠네스티 본부에 의해 세계의 3대 양심수로 선정된 그는 1990년 초 석방되었다. 주요 개인전으로는 «야스쿠니의 미망2»(아트스페이스C, 제주, 2008), «뉴욕교류전: 저항과 명상»(뉴욕 퀸즈미술관, 뉴욕, 2003) 등이 있고, 단체전으로는 «금지된 이미지 – 동아시아의 민주주의 통제와 검열»(NGBK, 베를린, 2015)이 있다.